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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키야의 일상/일상의 치유

철들기엔 아직 이르다.


제 나이 어느덧 삼십 줄에 들어섰지만 한때 순진하고 꿈 많던 철부지 소녀였던 적도 있었고 꾸미기 좋아하던 아가씨였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한동안 잊고 살았던 듯 합니다.
결혼해서 남편과 알콩달콩 맞부딪히며 몇년이, 찬찬히 성실히 커나가는 아이를 키우며 근 일년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네요.

길을 걷다 보면 "아줌마" 소리에 나를 부르는 거겠거니하고 뒤돌아보고는 하지만 아직은 소녀적 감성이 남아있는 건지 저보다 나이 어린 가수를 좋아하고 있답니다. ^^*

슈퍼주니어의 멤버이자 아이를 품었을 때 즐겨보던 드라마였던 "신데렐라 언니"의 ost였던 "너 아니면 안돼."를 불렀던 예성이 바로 제가 좋아하는 이이돌 가수랍니다.
태교도 거의 "너 아니면 안돼."로 했다시피 할 정도였었죠. 노랫말과 멜로디가 슬프기는 해도 엄마가 듣고 좋으면 그게 바로 진짜 태교라고 생각했기에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.
태교의 효과인지 울 아가는 그 노래만 나오면 아이팟을 가만히 귀에 대고 감상을 하는 듯한 행동을 한답니다.


이 철없는 아줌마가 하고픈 이야기는 지금부터예요.

근 한달 전 쯤이었나요...
남편이 술자리가 있으니 늦게 들어온다고 연락이 왔었답니다.
술자리를 자주 가지는 사람은 아닌지라 알겠다고 답을 보낸 뒤 생각해보니 조금 장난을 치고 싶더라고요.
그래서 '나 소원이 하나있어요'라고 카톡을 보내니 뭐든 들어준다는 기분 좋은 답이 돌아왔답니다.
마침 슈퍼주니어의 새 노래 뮤비를 보고난 후라 슈퍼주니어 앨범을 사달라고 했답니다.

전 당연히 "나이 들어서 무슨 짓이야!"라며 한 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되돌아온 답은...

[사실감있는 증거를 위해 카톡 캡쳐]

저 대답을 남편에게서 듣고서는
너무나 행복했답니다.
좋아하는 가수 앨범을 선물받게 되어서 행복한 건 아니었겠죠. ^^
'내 남편은 날 엄청 사랑하는구나. 내가 좋아하는 것까지 이해해 줄 정도로 날 좋아하는구나.'하는 생각에 무한한 행복을 느꼈답니다.

헌데 저 대답보다 더~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게되는 일이 그날 밤에 벌어졌습니다.
술을 마시는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더군요.
"예성이 너무 커. 그래도 울 마누라 좋아하는 거니까 혹여나 잃어버릴까봐 손목에 쇼핑백 꼭 걸고 술마시고 있어요."
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.
예성이가 너무 크다니...

그 진실은 남편이 늦은 밤 저에게 쇼핑백을 쥐어 주고서야 알게되었죠.
앨범이 LP판 크기 더군요.
거기다가 그룹 앨범임에도 개인 멤버 얼굴이 표지에 떠억하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.





[울 아가와 함께 앨범 크기 비교. 앞면에 예성이 얼굴이 크게 자리 잡고 있지만 울 아가가 뒤를 절대 뒤집지 못하게 막아서 앨범 뒷면 촬영]

그러면서 앨범을 살 때의 무용담을 얘기 해 주는데...

삼십대 후반의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며 슈주 앨범을 찾지 못하고 매장안을 십여분 활보하다가 지나가는 직원 분에게 "슈퍼주니어 앨범 어디있나요?"라고 묻자 직원이 친절히 웃으며 "어느 멤버로 드릴까요?"라는 질문에 약 5초간의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답니다.
그래도 용기를 내어 마누라가 좋아하는 "예...예성이요."라고 답하여 앨범을 사게되었다네요.
남자 아이돌과는 조금 어울리지않는 모양새에 얼른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직원이 붙잡으며 " 포스터는요?" 라고 묻기에 마누라를 생각하며 "주세요."하고 받아왔답니다.
주변에 여고생들이 쑥덕대는 것이 느껴졌지만 마누라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했노라고 너무나 뿌듯한 표정으로 자랑을 하더라구요.

그 무용담을 듣고 내가 이 사람이랑 같이 산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.

철없는 마누라, 아니 철들기 싫어하는 마누라는 옆에서 잘 맞춰주는 외조 대왕 남편 덕에 소녀적 감수성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을 걱 같네요.

때론 싸우고 화내더라도 이 날을 생각하며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고 보듬어야겠어요. 절 너무나 많이 사랑해 주는 내 남편이니까요.


iPod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.